고난의 행군

by 종화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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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피 끓는 노여움을 청산에 앞세우고
살을 에는 전선으로 떠나시는 님
그대의 화신이 되어 난 오직 그댈 기다려요
조국이 부르는 소리 당신을 부르는 노래
못듣게도 하고 싶지만 내 어찌 조국을 등질 수 있을까요
돌아오세요 살아오세요 해방의 선물 가슴에 안고
잊지말고 오세요

죽음을 넘어서 시체를 넘고넘어
구국의 전선에서 싸우시는 님
한 조각 구름이 되어 여린 내 가슴 따라갑니다
조국이 부르는 소리 당신을 부르는 노래
못듣게도 하고 싶지만 내 어찌 조국을 등질 수 있을까요
돌아오세요 살아오세요 해방의 선물 가슴에 안고
잊지말고 오세요
[고난의 행군 중에서 북만주 간 님]

* * *

'고난의 행군'은 일제치하 식민지 조국에서 무장투쟁으로 조국을 지켜 나간 이름없는 전사들의 지고한 애국심을 노래한 창작집의 이름이다.국가보안법과 음반법 위반이라는 구실로 수감생활을 하게 해 준 고마운(?)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는 분단이라는 구실로 가리워진 게 많다.민중의 투쟁은 가리워진 역사를 밝혀내고 새로운 내일을 열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역사를 보듬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은 역사를 책임져야할 우리들의 의무이자 실천이다.각박한 오늘만의 투쟁이 실천의 전부는 아니다.역사도 싸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하여 역사는 실천이다.
실천하는 역사의식은 나의 노래창작을 그대로 놓아 두지 않았다.절박한 실천을 요구했다 조금이라도 보탬만 줄 수 있다면 해야 한다는 결단을 요구했다.
몇곡의 노래로 얼마나 내용성 있게 역사적 진실을 표현 하겠는가만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묻힌 조국광복의 역사를 공공연히 연구하고 이해해 갈 수 있는 밑거름만 된다면 족했다.'고난의 행군'은 힘찬 행군을 시작했다.
일제에 항거한 민중의 역사는 다양했다.각개 정파로 갈라져 애국을 달리 소리치기도 했다.독립군들도 제각기 독립된 체계를 갖추고 일제와 싸웠다.물론 공산주의자들도 존재 했으며 공동의 적인 일제와 대항하여 순결하게 싸웠다.항일투쟁의 역사속에서 무엇보다 먼저 들추어 낼 것은 최전선의 투쟁이다.독립의 간판을 내 걸고 외세의 눈치나 보면서 기다렸던 사람들 보다는 민중의 피를 강탈하는 최 전선에서 온몸으로 대항하다 이름없이 쓰러져간 피의 역사를 먼저 살펴야 한다.총을 들고 수 백배의 적과 맞서 험난한 노정을 헤쳤던 그들을 먼저 살피지 않고서 항일투쟁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그 다음으로 조선사람이면 친일 반역분자를 빼고 모두가 애국자 일 수 밖에 없었던 까닭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했던 조선민중의 정서를 살펴야 한다.항일투쟁은 그 자체로만도 애국인 것이다.어떤 이데올로기도 일본과 맞서는데 장애가 될 수 없다.내가 만든 '고난의 행군'도 그와같은 맥락에서 출발하였다.총을들고 싸운 조선민중이라면 모두가 고난의 주체가 된다.그가 사회주의자이건,과거 지주출신이건간에 상관없다.일제가 적이었던 식민지에서는 공산주의자의 항일투쟁도 빛나는 조국수호투쟁임을 말할 나위 없다는 전제 아래서 작품을 구성하였다.항일투쟁을 가장 잘 그리고 있다고 판단되는 북한의 노래 두 곡을 삽입하여 내용성을 채우기도 했다.결국 '고난의행군'의 창작집은 남북한 민중을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로 묶어놓게 되었다.그런 취지도 아랑곳 없이 국가보안법의 기막힌 먹이감에 다름아니고 말았다.북한의 노래 두 곡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노래도 절반 이상이나 똑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사슬에 묶이고 말았다.

안중근이가 이등방문을 쏘니 의사가 되고,
공산주의자가 이등방문을 쏘면 테러범이 되는가?
말좀해보렴 이 지겨운 사슬아!
비참한 정치놀음은 이제 그만둬야 할 조국이어야 할진데 아직은 환상으로만 남아있다.오히려 내가 어리석은 발상이다.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하지만 언젠가는 되돌려 받고 말테다.미개한 국가보안법이 살아 생전에 바뀌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내가 고소를 할테다.악명높은 광주교도소의 특사가 어떤 곳인가를 알 수있는 기회를 반드시 제공하고 말테다.하여 순결한 민족의 역사앞에 오지게 당당할테다.
기다려라!

출옥을 하고 찾아보니 '고난의 행군'은 씨도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나를 가두고 톡톡히 재미를 본 모양이다.그 많던 녹음테이프들이 하나도 볼 수 없게 된 것을 보면.
역사가 그런다고 묻히는 것일까.그래서 탄압하는 것일까.텔레비전에 북한노래가 나오는 것은 괜찮고 내가 부르면 역사가 묻히는 것일까.생각할수록 터져 오르는 분노를 막을 길이 없다.사라져 버린 고난의 행군 테이프와 함께 나의 분노마저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싸움은 끝나지도 않았으며 내가 패배하지도 않았다.새로운 시작을 예고할 뿐이다.그들의 방식대로 나도 한 번 교묘해 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