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사

by 종화 posted Sep 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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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사




남성전사 산 오를 때 함께 오르며
불철주야 훈련하던 여성전사가
총을 맨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여라
아-- 해방의 진달래 꽃
그대는 자랑스런 해방조국에 딸이어라
흙가슴 열어 제치고 민족의 염원안고
혁명의 의지 불태우는 총을 맨 여성전사

궂은 일도 마다 않고 해방을 위해
전쟁같은 투쟁전선에 선봉에 서서
총을 맨 모습이 너무도 의연하여라
아 -- 해방의 진달래 꽃
그대는 자랑스런 해방조국의 딸이어라
흙가슴 열어 제치고 민족의 염원 안고
혁명의 의지 불태우는 총을 맨 여성전사

* * * *

스물 여섯의 나이로 군대를 제대한 해는 공장엘 다녔다.자신의 전망을 사고 할 겨를도 없이,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라는 무모함으로 굴러가는 생활은 팍팍하기 그지없고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해 주던 때이다.군대를 갓 제대해서 뭔가 많은 세월의 공백과 동지들간의 껄끄러움이 가시지 않던 그 당시로서는 열정으로만 달려 든 터밭이 되고 말았다.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높은 결의까지는 좋았는데 실천해 나가는 한 걸음은 썩 신통치가 못했다.무엇이든 오랜동안 쌓인 축적이 없이 일을 함부러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가를 배우게 했던 때이기도 하다.
방황인듯한 생활도 정착은 하였지만 그곳은 공장이 아니라 학교였다.느긋하게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싶었지만 학교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가! 신입생처럼 들락거려야 하는 낯설은 교정이 나를 퍽이나 고통스럽게 했다.열심히 함께 투쟁했던 옛동지들은 어느덧 학교를 나와 제각기 자기 자리를 잡고 사회를 걷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외톨이의 쓸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괜히 군대 갔다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듯한 후배동지들의 경계도 보통은 아니었다.뻔히 알면서도 내가 그 고통을 감내 해야지,다른이들에게 서운하다는 말로 배려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다시 학교에 들어온 운동하는 사람의 업보쯤으로 생각하고 나이를 잊고 철저하게 살아가는 방법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그 때처럼 열심히 산다는게 어려운 적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삶에서 얼마 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대여섯씩이나 나이를 덜먹은 후배라 할지라도 진지하게 대하고 동지적 관점을 놓지않고 하루를 이겨가다 보니 조국의 한길에서 낙오될 수 없다는 일념으로 가득찼다.잡스런 애로사항들도 하나씩 거두어 들이기 시작했다.동지들을 나이어린 동생취급을 절대로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는 투쟁원칙을 사수했다.함께하고 함께가는 생활도 차츰 익숙해 지더니 어느새 오늘에 서 있게 되었다.
사업속에서 후배에 대한 존경을 알게 해 준 그 때 그 시절에 노래의 주인공을 만났다.오월 투쟁위원회 활동을 함께했던 동지이자 사랑스런 후배이다 홍일점으로 무척이나 고생을 많이 했던 그가 기억에서 잊혀질 리가 없다.
투쟁위원회가 발족되면 출범식 이전에 으례껏 훈련을 떠났었다.훈련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것이 있겠는가만은 선봉에 서서 싸워야 할 최소한의 체력단련이요,산모퉁이 쯤에서 노숙을 하며 동지적 의리를 확인하는 기본으로는 충분했으리라 생각한다.물론 여성동지도 똑같이 받았다.노래의 주인공도 막힘없이 해 치웠다.
투쟁위원회가 그 생명력을 다하고 다음 주체들로 이양되어 갈즈음에 실시했던 산행구보에서 남성이 쓰러졌던 기억도 있는데 거뜬히 해치웠던 눈물많고 정많던 그 여성동지는 나와함께 징역밥을 먹기도 했다.

수감생활중의 하루였다.
같은 사동에 살던 한 동지가 여자사동을 향해서 그곳까지 함께 들어 온 애인이름을 목청껏 불러댔다.심난한 징역 하루쯤에 있을법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소리를 외쳐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던듯 싶다.남사와 여사가 몇발치 안되니까 혹시 개미소리 만큼이라도 들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크디 큰 함성이었다.핀잔을 주는 재소자들의 몇마디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몇 번을 더 외친다.개미소리가 아니라 그보다 더 작은 소리로도 들릴 리가 만무하다.높은 징역담을 사이에 두고서는. 나른하던 차에 동지들이 제각기 창가로 나와서 아무소리나 외쳐본다.
이런저런 얘기를 상하좌우로 주고 받으면서 창가에 턱을 받치고 있으려니 함께 투쟁하다 이곳에까지 같이 온 여성동지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 오르고 스쳐 지나간다.
턱에 손을 바친 채로 잠시동안 중얼거렸을 뿐이다.
오분도 안되어서 여성전사가 노래화 되었다.내가 만든 노래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든 노래가 되고 말았다.이렇게 짧은 시간에 노래는 만들어 지고.
순전히 그 동지의 덕택으로 노래가 되고.

듬직한 나이로 지금 어디서 뭘 하든지 나는 믿고 싶다.
더럽히지 않는 자기 삶을 쥐고 있을 거라고.
여성전사를 부르며 감동에 스스로 젖어들던 철창을 생각 하면서 믿고있다.
우리들의 그날의 당찬 결의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