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은 아름답다

by 박종화 posted Sep 02,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최선은 아름답다




가도 가도 긴 터널을 오늘도 터벅거리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된다.

노래 한 곡을 한달이 넘게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이 못난놈의 수준낮은 하루를 탓이나 해야겠다. 오늘처럼 지겨운 날은 그저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 한 가지 일에 끝을 보지 않고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성격 때문이다. 매사가 그렇다. 노래를 만들 때는 그런 편향된 성격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한 곡이 막히면 진도가 없다. 그렇다고 막히는 일만 계속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막히기만 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노래를 만들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막힘없이 급속도로 전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다 한 번씩 막히다가, 헤어나기 힘든 창작의 질곡으로 빠져들 때면, 무엇보다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분명한 이유는 내게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하루의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막히는 날이 많아지고 길어진다. 방에나 쳐박혀 갑갑한 오늘을 푸념하고 한탄섞인 오기들로 가득찬, 완성되지 못한 노래를 쳐다본다.그러면 여지없이 그렇게 살고 있는 내가 나타난다. 한달동안 붙잡고 있던 태만함이 엿보인다. 미친듯이 방문을 열고 나가봐도 버스 한 정거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발길 뿐으로, 헤매는 가슴은 불어대는 바람에도 쑥스럽다.
오후에 만나기로 한 먼 곳에서 찾아 올 사람을 떠올리면서 집에서 버스 한 정거장을 벗어날 즈음에 있는 허름한 지하 사무실을 찾는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오늘은 못다한 창작에 머리 한 쪽은 골똘해 있다. 몇마디 수인사를 건네고 상대의 표정에서 무언가 할말이 많음을 알고도 줄곧 기타를 들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해대니 좋은 노래가 안나올리가 있나? 손님 앞에다 앉혀 놓고 수 시간씩 튕겨대니 말이야 하하하..."
잠깐인 것 같았는데 세시간이라는 소리에 붉어진 얼굴로 기타를 내려놓고 대화를 나눈다. 진지한 대화속에서도 줄곧 선율은 꿈틀거린다. 반쪽의 머리는 대화속으로, 반쪽의 머리는 책상밑으로 움직이는 손가락 장단과  함께 선율속으로 갈라져 있다.
텅빈 집으로 돌아올 때 반기는 것은 산더미같이 쌓인 일들 뿐이다. 빨리 끝내야겠는데 노래는 완성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만 급해진다.그렇다고 내 맘에도 들지 않는 작품을 어떻게 대중앞에 내놓는단 말인가! 요즘처럼 가라앉은 사회현실은 가야할 노래마저 발길을 붙잡는다. 노래를 붙들고 한달을 지새봐도 성과없는 가슴과 머리는 이미 반쯤 미쳐있다. 곁에서 안타까움으로 지켜봐야 하는 사람도 덩달아 미쳐있다. 창작을 다그치는 동지들의 눈빛은 미쳐있는 가슴과 머리를 쏘아대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렇지 않다한들 나는,
미치지 않고서 오늘을 버틸 수가 없다.
미쳤기에 생활은 빛나고 아름답다. - 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