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08 20:08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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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


치열하다는게 뭘까?
욕일까 아니면 칭찬일까 동정일까?
여러번씩 물어도 아리송하다.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건네는 말 한마디를 새삼스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답을 찾기가 어렵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치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 자 없다고 생각하건만 유독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다.때문에 내게 치열하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라는 물음을 줄곧 던져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얼굴보다 작품을 통해 아는 사람들이 많다.이런 사람들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면 기쁘고 반갑다.처음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친숙하다.그들을 만나면 때론 실수도 하고,울기도 하고,왕창 술이나 마시고 다음날이면 헤매기도 한다.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최대의 관심사는 노래 창작에 관한 이야기들이다.지금도 욕인지 칭찬인지 구별하기 모호한 치열이라는 단어는 많은 질문중에 핵심을 차지하는 전범이다.
그들은 말한다.
"치열한 삶의 모습이 노래에 배어 있다.극한 분노가 조국과 삶에 대한 사랑으로 거침없이 발산되고 있다.당신의 노래가 그런 부류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자주 듣는 말이다.처음엔 그러려니 듣는 말들이 지금은 꽤 난감하다.그렇다면 치열하게 살자고 말들은 수도 없이 하면서 나 혼자만 치열했단 말인가? 어쨓든 치열에 대해 근원을 물어 오지만 내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신통한 답이 나오겠는가? 답해줄 말도 별로 없고 해서 얼버무리고 말지만 뭔가 하고싶은 말을 안하는것만 같아 안타깝기 까지 하다.어쨓든 좋은소리 듣고 난감해 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내귀에는 치열이라는 단어가 파괴라는 말을 연상케 들린다.함께 치열하지 못하고 혼자에게만 치열하다고 말할 때면 도둑이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파괴를 연상한다.
팍팍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나를 비웃는 말 같기도 하고,내 자신을 학대한다는 말 같기도 하다.그보다 더큰 이유는 치열이라는 말에 제발을 저리는 더 중요한 이유는 노래는 치열한 노래와 그렇지 않는 노래로 굳이 가를 필요가 없다는데서 출발한다.치열하면 서정적인 노래도 못 만들고,서정적인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치열한 노래를 못만들고 그러진 않는다.치열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웬지 서정적인 노래를 못만든다고 말하는 것같다.치열한 전투성이야말로 본질적인 사랑과 서정없이는 불가능함에 각박한 하루를 여유없이 살고 노래하는 것은 성실이고,사랑이고 내면세계의 새로운 건설이다.굳이 치열이란 말로 표현을 제한 시키는 것은 불필요하다.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치열하면 그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신을 가꾸어 나가지 파괴하진 않는다.팍팍한 생활고에 시달릴수록 겉과속이 황폐해간다고 해서 자신이 파괴되어 가는 것은 아니다.올바른 일에 순결을 바쳐 나서는 일은 파괴가 아니라 가꿈이다.성숙해가고 있는 가꿈이자 모두의 지향을 위한 초석이다.내가 하는 창작행위도 나의 가꿈이다.가꿈의 으뜸은 아낌없이 보살피는 것이다.나는 나의 것을 보살피고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나의 가꿈인 창작행위는 흡사 거머리가 피를 빨듯하는 악착같은 근성이 그 주위에 맴돌고 있다.일단 결정하면 중단은 없다.그러다가 잘못하면 천번도 더 중얼거린다.실패에 대한 재발의 위험을 막고자 함이요,성공에 대한 모범의 창출을 되새김질 하는 나만의 사업습관이다.창작의 실패도 그렇게 반복하고 중얼거리면서 대안을 내오고 노력하다보면 결과는 있다.생각보다 더 훌륭하게 끝맺음을 하는 경우도 있다.그런 작품이라도 마주 대할려고치면 스스로 작품의 황홀스러움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도 한다.나만의 생각일지라도 우아하고,아름답고,부드럽기 그지없는 작품에 허우적 거리는 기쁨 또한 만만치 않다.이럴 때는 치열이라는 두 글자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그럼에도 사람들을 만나면 치열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들어야 한다.
치열한 사회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치열할 수 밖에 없고,낙천적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다 낙천적일 수 밖에 없다.치열하면서도 낙천적인 조직이나 규율안에 사는 사람은 치열한 하루의 삶으로 낙천적인 미래를 그리게 된다.이런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며 우리의 대개가 그렇게 살고있다.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극히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나는 부드러운 노랫말을 위해 노력하고 땀흘린다.실재 그렇게 쓰여진 작품도 있다.하지만 치열에 묻혀 흔적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그것은 작품과 나의 관계속에서 빚어진 갈등 중의 하나가 되었다.또한 대중과의 관계속에서 생겨난 불만아닌 불만이다.
치열한 조국의 하늘아래 안위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치열하지 못한 삶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이다.일상적인 우리들의 삶 자체가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은 치열의 정도가 낮을 뿐이지 치열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셍각한다.내가 내오는 작품들도 치열하지 못한 삶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치열에 제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삶을 채찍한다.
타협과 비타협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백짓장 한 장같은 사이를 두고 사람을 저울질하고 현혹하기 때문이다.창작행위가 위와 같은 틈에 끼어서 방황하게 되면 반동은 아닐지라도 원칙없는 잡사상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만다.별의 별 생각들이 다 침투하여 순간의 명쾌한 결단을 방해한다.순결한 사상의식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생활이나 고난의 현실만을 고민에 두고 관성화로 가고만다.생활고의 현혹에 두리번 거리는 창작행위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최소한 내게는 그렇다.이런 생각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치열의 본질을 얼마나 고상하게 표현해 낼 것인가하는 방법상의 미비점들이다.

치열성이 돋보이는 노래다고 해주는 말들은 반대로 예술적 형상화의 단점을 지적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치열성 보다는 예술적 승화가 어울어지는 작업을 하라는 말로 받아들이겠다.치열이라는 상자속에 가두어진 예술적 지향들을 다시 한 번 각인하는 계기로 삼을 터이다.
치열해서 좋다는말로 용기를 주고자 하는 동지들의 뜨거운 애정을 빌미로 여러가지 주섬거리다 보니 영 딴 곳으로 와서는 결국 반성의 도가니로 빠져 버렸다.그래도 어쩔 수 없다.나를 위한 채찍은 나와 모두의 발전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이 지점에서는. - 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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