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5 15:51

황당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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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여자

깊은 밤이다
정리할게 많아서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퇴근을 못하고 업무를 보고 있다
공연을 위한 음악 정리를 위해  
일분이라도 빨리 작업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만 바쁘고
현실은 아직 나의 발걸음을 사무실에 잡아두고 있다
하는 수  없이 못한 일들은 내일로 미루어 두고
퇴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문을 나서서 길을 서두른다

시간도 늦고 해서 택시를 타려고 사무실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성의 신음소리 같은데 왜 이시간에 들리는 걸까
귀를 섬세하게 세우고 소리가 있는 곳을 따라 가본다
바로 옆에 있는 학원 안쪽 계단인듯 싶어 내다 봤다

오메 ! 이것이 뭐다냐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아뭏든 겁나게 어려 보이는 앳된 여학생 하나가
계단에 완전 큰대자로 널부러져
각이 서있는 계단에 등작을 걸치고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누워 있을래면
그 것도 남의 계단에 누워 있을래면
소리나 내지 말지
괴로운듯 고통인듯 한 신음소리로 끙긍거리며 누워있다
완전히 벌러덩 누워있다
무지하게도 술을 마셨나보다
얼마나 구토를 많이 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많이 먹어댔는지 구토량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누워있는 전체부근이 구토량에 흥건히 젖어있다
질퍽질퍽하다
머리카락도 폭삭 담구고 손이고 등짝이고 가방은 물론
모든 것이 젖은 걸레가 돼 있고
고통스러운 듯  뒤척거린 통에
왼쪽 오른쪽 좌로굴러 우로굴러...
온몸이 토사물과 일심동체다

오메나야 ! 이걸 어쩐다냐
한 해를 마감하며 세운 오직 하나의 계획
술을 다스릴 줄 아는 내가 돼 보자고
씹고씹고 곱씹은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술마신 사람의 나뒹굴어진 모습이다냐
송년회다 망년회다 어디서 곤죽이 되어 마시고 퍼져 있는
이 불쌍한 어린양을 어쩌면 좋다냐

꾸역꾸역 다시 사무실로 향하고 휴지와 걸레를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대충대충 그녀의 몸을 닦고는 '이봐요 학생'을 연거푸 불러댔다
뺨을 살짝 몇 대 쳐 보았다
요지부동이다
신체부위 이곳 저 곳을 건드려 보았다
요지부동이다
내가 잡을 수 있는 신체 부위를 걸레로 닦고 나서
다시 잡고 막 흔들고 발로도 걷어 찼다
깨우기 위해서다
또 요지 부동이다
너무나 더러워진 몸뚱이를 들고 택시를 탈 수도 없고해서
왠만하면 들쳐업고 사무실에 뉘여놓고 싶은데
엎어지면 코닿는 사무실을 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이다
그 놈의 신음소리만 따라 안왔어도 내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텐데 내 눈으로 봤는데 얼어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
밖에서  
* * 야 ! 를 연신 부르며 사람을 찾는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직감적으로 그를 불러 들이고
찾는 사람이 이 사람 아니냐고 물었다
맞댄단다

아 ! 이 얼마나 기쁘냐
맞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줄행랑을 쳤다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도 되는데
괜히 거기 서 있다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덮쳐올 때
비겁을 무릅쓰고 사무실 앞에서 도청앞까지 달려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탔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택시안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엄습해 온다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술마시고 땅바닥에 잤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토악질을 해 댔을까
수천 수만의 후회가 나를 감싼다.
술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살아 온 세월
아직도 술의 노예쯤으로 살아가는 세월
아니다
더이상은 아니다
어떤 순간도 술은 나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술이 내게 준 것은
피폐해진 영혼과 망가진 몸뚱이 삶의 무질서와 체계없는 생활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들이나 소시민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잡동사니 결과물들이나 던져 주었다

너무나 무서운 삶의 자학이었다
조심하자
어린 그 여학생도 내일부터는 조심하겠지
올 해 단 한 해만이라도 술을 이겨내는 내가 되고 싶다
?
  • ?
    오렌지 2003.04.12 12:11
    ^^캬~~~~머쮠 박쫑아..........성~존경해부러~~~그런데...초행길에 내가 넘 기스냉거 아닌가 모르겠네여.
  • ?
    종화 2003.11.10 17:06
    어 지금까지도 리플 단 줄을 몰랐네
    알았으면 일직 리플을 달아주었을텐데 ....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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