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0 17:22

가을 한 편

조회 수 243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파랗게 시린 가을이다

며칠 전에 동네 아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성히 자란 풀을 베어달라는 곳이 있는데 자기는 바빠서 못하겠고
용돈이라도 벌 양이면 나더러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화다
마침 용돈도 궁하고 시간도 좀 남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예초기를 들고 가르쳐 준 일터로 갔더니
풀이며 나무며 무성한 것이 몇 년은 베어내지 않은 듯하다
정신없이 일을 했다
하루일이 다 끝나도록 주인이란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일을 나가 쌔빠지게 일을 했다
여전히 일 시킨 사람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참 웃긴 일이다
인부 일 시켜놓고 새참은커녕 점심도 챙겨주지 않는다
3일 째 되는 날 또 뒈져라 일을 했다
오후 3시쯤 돼서
빨간 넥타이에 양복남생이 차려입고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얼굴엔 정신적 빈곤 끼가 좔좔 흐른다
이 땅 주인이란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집터를 닦을려고 풀을 벤다는 설명을 늘여놓고
뒷짐에 잡고 있던 음료수 한 병을 내 놓고 맛있게 마시라 하고 서둘러 가버린다
뚜껑은 녹이 탱탱 슬었다
700원짜리 오란씨 한 병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갈 때 엄마가 삶은 계란과 함께 항상 챙겨주던
그 오란씨 음료수다
환타도 잘 안 먹는 요즘에 100원이라도 더 싼 것을 고른답시고
오란씨를 골랐나보다
시골이라 아직도 구멍가게에 가면 있나보다
나를 뭘로 보는 것일까
사람으로 보기는 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조시대 머슴쯤으로 보는 것일까
그렇다 한들 밥을 주든지 밥값을 쳐주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이
밥과 새참을 주는 것과 똑같은 임금조건에
밥도 안주고 새참도 안주고 있다가
3일 만에 와서 녹슬은 기찻길이 아니라 녹슬은 오란씨 한 병이다
이것이나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갑자기 울화통이 터져버린다
일주일 일감인데 더 이상 일 못하겠다
고 놈이 가져다 논 오란씨는 잘 보이라고
사람 눈높이만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고
너나 많이 쳐 드시라고
까치밥 홍시처럼 헤롱헤롱 걸쳐두고 집으로 와 버렸다
시골인심마저 이래서야...

참 아린 가을이다
?
  • ?
    언니 2013.10.08 10:25
    "까치밥 홍시처럼 헤롱헤롱 걸쳐두"신 오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글이 넘 재밌고 좋아요^^
  • ?
    종화 2013.10.10 00:58
    글쎄요~ 아마 오란씨발 정도로 녹슬지 않았을까요~ㅋㄷㅋㄷㅋㅋㅋㅋ...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7 서예전을 마치고 종화가 2009.12.26 215
» 가을 한 편 2 종화 2009.10.20 243
95 작업 끝 종화 2009.09.18 181
94 박종화 서예산문(나의 삶은 커라) 연재 중 관리 2009.03.29 304
93 마루에 앉아 종화 2009.03.19 414
92 가석정의 겨울 종화 2008.12.07 443
91 종화는 작업중 관리자 2008.07.23 429
90 신바람식구들 종화 2008.05.20 434
89 [re] 신바람식구들 1 꼬마 이쁜이 2008.05.22 453
88 뜨는 해를 보며 종화 2008.01.16 391
87 가네요 종화 2007.12.25 486
86 철 잃은 꽃들 종화 2007.11.23 583
85 11일 종화 2007.11.12 572
84 공연을 마치고 난 뒤 종화 2007.09.28 426
83 벌써 20년인가 2 종화 2007.02.26 875
82 형나요 , 해남떡 해남후배 2006.12.21 636
81 그러고 보니 종화 2006.11.04 635
80 처음 본 순금부적 종화 2006.11.04 696
79 작업가운데 돌연히 1 우성 2006.04.11 670
78 방을 치우다가 2 종화 2006.02.24 6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