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by 종화 posted May 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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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1
200여명 남짓한 유치원 아이들이 작업실이 있는 농장으로 견학을 왔다
노란색 유니폼에 노란색 모자를 쓰니 영낙없이 병아리 새끼들이다
숫자가 많아서 버스를 빌려서 온 모양이다
나는 잠시 짬을 내서 작업실 정원을 가꾸고 있는 중이었다
꽃밭에는 한쪽에 상추랑 쑥갓이랑도 심어놓고 점심 때면 뜯어먹고 있어서 풀을 자주 메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조를 나누어 농장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농장에 널려있는 들풀들 하며 살구나무 매실나무 감나무 염소들 토끼들 오리들 닭들 등등 많은 것들을 구경 시켜준다
어떤 선생님(스무살 남짓 돼 보이는...)이 내가 일하고 있는 정원으로 아이들을 인솔하고 오더니 쑥갓을 가리키며 이건 뭐예요 라고 물어본다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이 질문하고 다시 선생님이 대답한다
이것은 쑥(환장허겄네!)이예요 라고 한다
뭐라고 했어요 다시 물으니 아이들은 쑥(얼씨구!)이요 라고 합창을 한다
다시 선생님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아저씨가 쑥에 물을 주고 있네(우쒸 내가 미쳤다고 쑥에 물주냐!)
여러분 중에 누가 아저씨한테 직접 물어 볼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잘난 체 하기를 좋아하는(어디가나 꼭 한 놈씩은 있게 마련..) 한 아이가 앞으로 불쑥 나서더니 쑥을 가리키며
-아저씨 이게 뭐에요 라고 묻는다
-이건 쑥이 맞는데요 쑥이 갓을 썼어요
-갓이 뭐예요 다시 묻는다
-응! 갓은 쑥이 쓰는 모자예요
-그런데 모자가 어딨어요(이 쯤되면 선생님은 안절부절못해 안달이 나고...)
-너희들이 쓴 모자는 그렇게 생겼고 쑥이 쓰는 모자는 이렇게 잎이 되어 있는거예요
-식물이니까 너희와 모자가 다르거든 알았찌
다시 아이들이 네 하며 합창을 한다
-선생님이 쓰는 모자 중에는 이렇게 쑥이 쓰는 예쁜 이파리 모자도 있대요
선생님은 멋쟁이라서 쑥이 쓴 모자도 가끔씩 쓰고 다닌단다 알아찌이 --
다시 네-에 합창한다(선생님 죽을 맛이다)

아무리 도시처녀라고 쑥갓을 모르고 살아온 스무살 인생이라니...
하기사 모른다고 시집을 못가냐
시집가서 해야 할 일을 못하냐
낮 일을 못하냐 밤일을 못하냐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여린 속살이 여전한 처녀선생님
젊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건가?
그 선생님 오늘 내 눈에는 어쩐 일인지 몰라도
참 이뻐 보였다  

아이들 2
또 한 선생님
살구나무 앞에 서더니
아이들을 보면서
-이 나무는 매실나무예요
뭐라구요
-매실나무요
그리고 다른 설명은 없고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나는 뒤 따라가는 선생님을 보며
-어이 선생니-님
이 나무는 매실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예요
갑자기 선생님이 돌아서 가는 아이들을 막무가내로 불러들인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다시 이리로 와 봐 빨리빨리 와
-이 나무는 매실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야 알았지
뭐라구
-살구나무요
다른 설명은 아무 것도 없고 다시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아따
모르면 말을 하지를 말지
선생님이라서 아는 척 해야 하는 건가
쩝쩝

아이들 3
따스한 햇살이 사람의 신경선을 복판으로 가르는 봄날
행사가 있어 나주 영산포에 갔다
행사가 아직 시작이 안되어서 잠시 행사장 주변으로 빠져 나와서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앞에는 어린 꼬마들이 분수대를 끼고 재잘거리며 개구쟁이 짓을 하며 놀고 있다
예닐곱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인 듯 싶다
한 남자 아이가 쉬야를 한다
한쪽 귀퉁이로 가서 바지를 내린다
근데 요놈이 바지를 다리밑까지 내린다
주변에 있는 자기 친구들의 시선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 쯤해서 아 - 나도 어릴 적 저렇게 쉬야를 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한 손에는 과자 봉다리를 들고 있고 한손으로 잘도 내린다
꾸역꾸역 한 손으로 다리밑까지 바지를 내리고 쉬야를 봤다
그리고 또 다시 한 손으로 바지를 올린다
잘 올라가지 않는데 기어이 한 손으로만 올린다
잠시 과자를 내려 놓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갑자기 한 여자 아이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뒤에서 두 손으로 아이의 바지를 올려준다
그러면서 아이를 뒤로 돌려 세운다
그리고는 고추를 손으로 닦아준다
쉬야 한 친구보다 한 두 살 더 먹어 보인다
꼬추를 닦고나서 완전히 바지를 올려준다
뭐라고 하면서 바지를 올려주는 것 같은데
약간 멀리 떨어져 있었던 상태라 알아듣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바지춤을 올려준 아이에게
-니가 누나되니
-아니요 하면서 막무가네로 막 달려가 버린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하여 물어보고 싶은 말 (크크크크)들이 있었는데 안타깝다

너무나 잊고 살았던
한가한 봄날 낮에 보는 정경스러운 풍경이다
(아니라구... 눈에 선하게 그 풍경이 그려지지 않는다구... 어쩌라고 글쓰는 재주가 여기까진걸...)